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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기억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범죄<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블랙아웃>

by reohoho 2025. 12. 16.

한국 드라마 백설곤주에게 죽음을 블랙아웃 포스터 사진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은 기억 상실이라는 장치를 단순한 미스터리 해결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작품이 진정으로 파고드는 지점은 개인의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서 집단의 기억이 어떻게 진실을 대체하고, 그 왜곡된 서사가 또 다른 폭력이 되는가 하는 문제다. 작품 속에서 진실은 명확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의 입과 시선, 침묵과 소문을 거치며 조금씩 변형되고, 결국 모두가 믿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된다. 이 드라마는 범죄의 실체보다도, 범죄 이후 형성되는 집단적 기억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은 기억을 잃은 한 사람보다, 기억을 공유한다고 믿는 다수가 훨씬 위험할 수 있음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증명한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이야기는 남는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의 출발점은 주인공의 블랙아웃 상태다. 그는 결정적인 사건의 기억을 잃었고, 그 공백은 곧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억의 부재 자체가 아니라, 그 빈자리를 누가 어떤 이야기로 채우느냐다. 드라마는 개인의 기억이 사라진 순간, 집단이 얼마나 빠르게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이 서사는 사실 확인의 결과라기보다, 불안을 제거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진실보다 확정된 거짓을 선호하고, 모호한 질문보다 단정적인 결론에 안도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단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굳어지고, 반박하기 어려운 현실처럼 기능한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은 이 과정을 통해 기억이 사라진 개인보다, 기억을 공유한다고 믿는 집단이 훨씬 강력한 서사 권력을 쥐고 있음을 드러낸다.

집단 기억은 어떻게 진실을 왜곡하는가

이 드라마에서 집단 기억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소문, 침묵, 암묵적 합의를 통해 조율되고 관리된다. 마을 공동체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보다, 기존의 이야기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안전함을 부여한다. 그 결과 집단 기억은 점점 단순해지고, 복잡한 맥락은 삭제된다. 주인공은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침묵하지만, 주변 인물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이 침묵은 개인의 방어 기제이자 집단의 자기보존 전략으로 작동한다. 드라마는 이 과정을 통해 진실이 왜곡되는 방식이 반드시 악의에서 출발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스스로를 가해자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모두가 믿는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그 반복은 결국 하나의 허위 기억을 완성시키고, 그 기억은 한 사람을 영원히 가해자로 고정시킨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은 이처럼 집단 기억이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폭력적 장치가 될 수 있음을 냉정하게 묘사한다.

진실보다 오래 남는 것은 기억의 합의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이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은 진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집단 기억은 과연 바뀔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에서 진실은 언젠가 드러날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집단이 공유한 기억은 이미 하나의 현실로 기능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어온 이야기를 부정하는 대신, 새로운 진실을 외면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개인을 보호하는 동시에,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 작품은 집단 기억이 반드시 사실에 기반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합의만으로 충분히 강력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은 범죄 미스터리를 넘어, 기억과 믿음, 그리고 공동체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을 잃은 사람보다, 진실을 외면한 집단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이 서늘한 통찰은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