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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판타지로 실현하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이 선택한 방식

by reohoho 2025. 12. 27.

한국 드라마 경의로운 소문 포스터 사진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은 악귀를 사냥하는 초능력자라는 장르적 설정을 통해 정의가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색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정의는 법과 제도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대신하는 힘으로 등장한다. 드라마는 선과 악을 단순히 초월적 존재의 대결로 그리지 않고, 인간 사회 속에서 반복되어 온 불의와 권력형 범죄를 전면에 배치한다. 〈경이로운 소문〉이 그리는 정의는 통쾌함에 머무르지 않으며, 왜 이런 방식의 정의가 필요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는 정의

〈경이로운 소문〉의 세계에서 악귀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생전에 극단적인 악행을 저질렀지만, 법의 심판을 온전히 받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드라마는 이 설정을 통해 제도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낸다. 서론부에서 정의는 이미 실패한 상태로 출발한다. 피해자는 고통 속에 남겨지고, 가해자는 권력과 돈 뒤에 숨는다. 이 지점에서 카운터들의 존재는 초법적 정의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드라마는 왜 사람들이 이러한 정의를 갈망하게 되었는지를 차분히 설명하며, 단순한 히어로 서사가 아닌 사회적 질문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처벌이 아닌 책임을 묻는 정의

〈경이로운 소문〉이 구현하는 정의의 핵심은 단순한 응징에 있지 않다. 악귀를 소멸시키는 장면은 통쾌하지만, 그 이전에 드러나는 서사가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본론에서는 가해자가 어떤 선택을 통해 악으로 기울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이 파괴되었는지가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카운터들은 감정적 분노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피해자의 억울함을 대신 기억하고, 책임을 끝까지 묻는 존재다. 이 정의는 즉각적인 만족보다 과정의 정당성을 중시하며, 힘을 사용하는 자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판타지를 통해 현실을 비추는 정의의 얼굴

〈경이로운 소문〉이 끝내 도달하는 정의는 완벽하지 않다. 모든 악이 사라지지도 않고, 상처가 단번에 치유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의미 있는 이유는 정의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론부에서 정의는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불의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선택으로 남는다. 초능력은 정의의 수단일 뿐, 그 중심에는 끝까지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다. 〈경이로운 소문〉은 정의가 제도로만 유지될 수 없을 때,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그 빈자리를 메우려 하는지를 판타지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작품은 그래서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정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로 기억된다.